1920~30년대 재즈계를 대표한 인물이 루이 암스트롱이었다면, 1940년대는 디지 길레스피의 시대였다. 트럼펫 주자인 디지 길레스피는 뉴욕의 클럽가에서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와 짝을 이루어 활약하면서 비밥 재즈를 개척했다. 디지 길레스피는 후배인 마일스 데비이스에 비해 주법이 강하고 남성적이었다.

디지 길레스피가 뉴욕으로 진출한 것은 1937년. 콜맨 호킨스, 얼 하인즈 등과 교류하며 듀크 엘링턴 악단에 참여했다가 빌리 엑스타인 악단의 원정공연에 참여한다. 찰리 파커, 사라 본, 아트 블래키와 관계를 맺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들의 공연 도중 세컨드 트럼펫 주자가 불참하는 바람에 새파란 신출내기이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무대에 올랐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본명은 존 벅스 길레스피였는데, 무대매너가 어지러워서 디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뺨을 부풀리는 특유의 연주 표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연주습관 뿐만 아니라 비지니스나 사무적인 측면에서도 외향적이었다. 그는 구부러진 트럼펫으로 특허를 내려고 악기회사에 아이디어를 낸 적도 있었다. 1860년대 이미 프랑스의 뮤지션이 특허신청을 해서 좌절됐지만. 

2차세계대전은 클럽가에 과세 부담을 안겼고 재즈 클럽은 쇠퇴하고 빅밴드 시대도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이때 디지 길레스피는 동료들과 함께 즉흥적인 잼세션을 통해 새로운 재즈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빅밴드 스윙의 퇴조는 재즈의 대중성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비밥의 시대가 열리며 뮤지션들의 독자적인 고민은 한층 더 풍성해졌다. 비밥이라는 용어는 디지 길레스피의 곡 <Bebop>에서 유래되었다는 일설이 있다. 스윙시대 4비트를 기본으로 했던 재즈는 비밥으로써 8비트 중심의 음악이 되었고, 흑인적인 리듬이 전면에 대두되었다. 디지 길레스피는 쿠바 흑인음악에도 접근하여 <Monteca>를 남기기도 했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