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재즈는 음악에서 소리로 넘어가야 한다. 무용이 움직임으로 가는 것처럼. 록밴드 드러머에서 전위음악인이 된 흑우 김대환의 지론이다.

원래 그는‘애드 포’가 첫 음반을 내기 직전까지 신중현과 함께 록과 블루스를 연주했다. 조용필, 최이철(훗날 ‘사랑과 평화’)을 대동하고 ‘김트리오’라는 밴드를 결성했다는 것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내 그가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함의 미학이다. 드러머는 스네어, 베이스 드럼, 심벌, 탐 등 다양한 악기를 모아서 연주한다. 그러나 김대환이 택한 것은 하나의 북이다. 사실 북 하나에서도 여러가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한 손에 여러 채를 잡았다. 

한꺼번에 여섯 개의 채를 잡는 그의 방식은 보는 것만으로 진기한데 그의 공연에는 두가지 더 특이한 것이 있다. 하나는 연주 직전에 손에 물을 묻혀 창호지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다. 그는 종이 뒤에서 거꾸로 문장을 써내려가는데 이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글씨가 바르게 보인다. 다른 하나는 무대에 등장해 뻥뻥거리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그에게는 이것도 음악이었다. 그는 비내리는 날의 바이킹을 즐기며 헬멧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음악삼아 즐겼다.

북 연주와 바이킹이 그의 동적 활동이라면, 세서미각은 정적 활동이다. 그는 쌀 한톨에 200여자의 반야심경을 새겨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죽산 조봉암의 영향이다. 악극단과 방랑생활을 보다 못한 김대환의 외삼촌은 그를 경찰학교에 입학시켰다. 경찰직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고 한다. 졸업 뒤 그가 맡은 임무는 외숙모의 친오빠이기도 한 조봉암 선생의 경호였다.

"2년 정도 그분을 호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정신, 옥고와 갖은 고문을 치른 뒤 5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글씨를 기막히게 써 내려가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그림자처럼 그분을 따라다니며 나는 늘 그 생각에 골몰했다. 훗날 쌀 한톨에 반야심경 200여 자를 새겨 넣는 '미친 짓'도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 흑우 김대환, <<연습은 장엄한 구도의 길이었다>>, 현암사, 2005, 31-32쪽.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