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은 음악시스템을 바꾸었다. 나이트클럽이 아닌 국가 정책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특히 '트로바의 집'을 통해 노에바 트로바가 등자한다.
트로바란 과히라, 과라차, 푼토, 볼레로 등 국제적인 음악 형식을 포괄하고
유럽의 오페라를 수용하여 형성되었다.
한두명의 가수와 기타, 클라베로 반주하는 트리오 형태였는데, 쿠바 민요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댄스 음악 대중화 이후 트로바는 쇠퇴했지만, 로컬 음악으로 존재하던 걸 정부가 재발굴한 것이다.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1950년대 중반 로스 트라디씨오날레스 라는 그룹 이끌며 쿠바 혁명의 음악 대표 역할을 했다.
그런가 하면 실비로 로드리게스, 파브로 밀라네스가 등장하여 사회주의 메시지 결합하였다.
누에바 트로바는 누에바 칸시온과 교학상장의 관계에 있는데, 누에바 칸시온은 독재정권 저항하는 음악이었다면
누에바 트로바는 혁명정권의 직간접적 후원 아래서 발전한 음악이었다.
누에바 트로바는 단순한 관제 기성세대의 음악이 아니다. 후안 카를로스 포르멜 같은 젊은 음악인도 있다. 

한편 쿠바에서 뉴욕으로 1940년대 이주한 음악인들이 미국 재즈 뮤지션과 함께하며
아프로쿠반 재즈가 발전했다. 혁명 이후에도 재즈는 있었다. 국립예술학교의 정규과목에도 삽입되었다.
쿠바에서는 혁명 이후 뉴 쿠반 재즈 탄생한 셈이다. 이라케레가 뉴 쿠반 재즈의 대표적 밴드다.
이들은 라틴 재즈, 비밥, 쿠바 민속음악을 전염성 강한 리듬에 결합시켰다. 바타 드럼 사용하여 손 바타, 바타 룸바로 불리웠다. 이라케레는 미국 민주당 카터 행정부 시절 국제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후 피아니스트 곤살로 루발카바 가 등장해 뉴 쿠반 재즈에 동참했는데, 그는 1993년 미국 망명하고 말았다.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서 쿠바 뮤지션들은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로스 반 반이 대표적이다. 로스 반 반은 공산주의 밴드로 찍혀 1999년 어렵게 마이애미에서 공연을 가졌다. 1969년 결성한 이들은 오랜 기간동안 끊이지 않고 활동함으로써
쿠바의 롤링 스톤스가 되었다. 그들의 장르는 송고로, 손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손을 혁신한 것이다.
아프로쿠반은 물론 다른 캐러비안의 리듬을 수용했다.

로스 반 반을 기점으로 새로운 세대의 음악은 팀바로 발전했다. NG 라 반다가 대표적 그룹이다. 리더인 호세 루이스 코르테스는 다름아닌 이카케레의 전 멤버. 팀바는 쿠바 음악보다 정열적이고 광적이며, 손이나 송고보다 즉흥성 더 강하다. 거리의 댄스 음악으로 하이퍼 살사라고도 한다.

이후 룸바를 록 사운드에 접목한 신테시스, 전통적 손에 가까운 시에라 마에스트라, 모던 손의 쿠바니스모 등
제3세대 음악인들도 출현하였다. 한편 룸바는 뉴욕에 상륙해 살사가 되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음악이 혼합된 쿠바 음악이 미국 음악과 혼합한, '혼합의 혼합'을 이룬 셈이다. 

Posted by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