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문:
1. 방송 가운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이슬람 문화권으로 헝가리 서부가 거론되었는데, 서부가 아니라 중부임을 알립니다.
2. 방송에서 '무지카시'가 여러번 '무자카시'로 발음되었습니다. 철자를 읽으면서, 해당 언어의 발음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벌어진 실수입니다. 사과드립니다.
3. 월드뮤직을 공부하는 동시에 방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관계로 벌어진 일들입니다. 앞으로 좀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헝가리의 지배적 민족은 마자르족이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사이에 낀 마자르족은
언어상 우랄어족에 속하고 유럽의 나라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한국처럼 성을 앞에 쓴다.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헝가리인은 항상 침입에 시달려 왔다. 특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150여년동안
받으면서 국토는 셋으로 쪼개졌다. 헝가리 서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 가톨릭 문화권이 되었고,
중부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동남부권인 트란실바니아와 동부권은
개신교 문화권이 되었다. 이중 트란실바니아가 헝가리의 진정한 문화적 산실로 일컬어지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현재 루마니아의 영토에 속한다.
헝가리 음악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곡으로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삽입된
마르타 세베스첸의 <Szerelem, Szerelem>(사랑, 사랑)이 있다. 이 곡으로 일단 헝가리 음악의
향취를 느껴보자.
오스만 투르크가 물러나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면서 헝가리 문화에는 비로소
유럽 문화적 성격이 매우 짙어졌다. 이때 근대 음악이 유입되어 도회적 스타일의 음악이 탄생했고,
집시 오케스트라가 그 사례다.
헝가리의 레스토랑에서는 집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집시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 1, 2,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침발롬으로 이뤄져 있다.
헝가리 민족음악의 선구자 벨라 바르토크는 "자국의 민속음악이 외부에서 받은 영향을 나타내는
징표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품격을 너무 낮추는 일일까. 하지만 어떠한 언어나 음악이든 외국의 영향 없이 존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기서의 외부는 '집시'를 의미한다. 그는 집시 음악으로서 유입된 것이 아닌 진정한 헝가리 음악을 찾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벨라 바르토크와 졸탄 코다이 등은 농민 음악에서 헝가리 음악의 전통을 발견했다.
에디슨이 발명한지 얼마 안되는 추음기를 들고 농촌음악을 채보하였다. 그 결과 집시 오케스트라라는 도회지
음악에 대비되는, 농촌의 민속음악이 정립되었다.
바르토크와 코다이가 주목한 지역이 바로 동남부권인, 트란실바니아다. 현재의 헝가리 서부, 북서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드라큘라 백작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은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양 역사학계가
분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헝가리인들은 원래 자신들의 땅이지만 9세기에 루마니아인들이 이쪽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하고, 루마니아인들은 헝가리인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바르토크와 코다이가 개척한 헝가리 음악은 1차대전 이후 루마니아에 트란실바니아를 넘겨주고, 2차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동구권 블록'에 포함되었다. 이 상황을 바꾼 건 탄카즈라는 음악적 운동이 1970년대 이후 태동하면서부터다. 탄카즈는 '댄스 하우스', 농촌의 춤추는 공간을 뜻한다. 탄카즈는
국립 악단이 연주한 민속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발했다. 국가가 인위적으로 정립한 것을 월듀뮤직으로
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거꾸로 탄카즈는 전형적인 월드 뮤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탄카즈 쪽의 대표적인 음악인이 바로 마르타 세베스첸과 무지카시. 세베스첸의 모친은 졸탄 코다이의 제자였고, 무지카시는 바르토크의 작품을 연주했다.